
한국인이 1년에 소비하는 돼지고기는 1인당 30kg에 달하며, 그 중 삼겹살이 60%를 차지합니다. 삼겹살을 구워 먹는 문화는 한국 고유의 식문화로 2021년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 등재될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1960~70년대만 해도 누구도 삼겹살을 불판에 구워 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누린내 가득한 돼지고기가 오늘날 국민 소울푸드로 자리 잡기까지는 한 기업의 과감한 도전과 기술 혁신이 있었습니다.
삼성 양돈사업의 시작과 이병철 회장의 비전
1968년 7월, 서울대학교 출신 엘리트 학생 18명이 삼성 그룹 면접장에 모였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직접 면접을 진행한 이 자리에서 농업경제, 농학, 축산학을 전공한 단 4명만이 최종 선발되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선발된 학생들에게 "삼성 그룹의 미래는 전자와 축산"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금융업부터 전자 산업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던 삼성이 축산업을 전자 산업과 동등한 핵심 사업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1969년부터 이병철 회장은 용인 지역에서 약 2,000명의 땅 주인을 설득해 축구장 2,000개가 넘는 광대한 부지를 확보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돼지고기는 소고기에 비해 인기가 없었지만, 소는 번식이 어렵고 성장 기간이 길어 늘어나는 고기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웠습니다. 반면 돼지는 사육과 번식이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게 개체수를 늘릴 수 있어 시장 수요 대응과 외화벌이에 적합했습니다.
1973년 5월부터 6개월에 걸쳐 삼성은 일본 최고의 양돈장 중 하나인 사이복장에서 종돈 614마리를 비행기 4대에 나누어 한국으로 들여왔습니다. 용인 땅에는 돼지를 키우는 돈사 100동이 건설되었고, 이병철 회장이 직접 선발한 젊은 축산 전문가들이 이 돼지들의 관리를 맡았습니다. 회장이 직접 인재를 선발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은 축산업을 단순한 부가사업이 아닌 미래 성장동력으로 본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이는 식량 자급과 수출 산업화를 동시에 추구한 당대 기업가의 선견지명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기업형 축산 시스템과 양돈 기술의 혁신
일본에서 들여온 614마리의 돼지를 돌본 인물 중에는 후에 '양돈 대부'로 불리게 된 전 한국 양돈연구회 회장 윤희진 씨가 있었습니다. 당시 20대 후반이던 윤희진 씨와 동료들은 한국에서 돼지를 대량으로 키워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매일이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돼지가 코피를 흘리는 비염 증상을 보여도 원인과 치료법을 알 수 없었고, 사료에 대한 반응, 항생제 투여 효과 등을 일일이 기록하며 연구했습니다.
그들이 작성한 노트에는 "오늘 75년도 판매 두수 만 호가 출하됩니다. 73년도 초창기를 생각하면 참 감회가 깊죠"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614마리로 시작한 돼지가 불과 2년 만에 만 마리로 증가한 것입니다. 첫 번식 성공 당시 이병철 회장은 기쁨을 표하며 농장 직원 가정마다 아기 돼지 한 마리씩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1985년까지 12년간 돼지 개체수는 최대 6만 마리까지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성과의 핵심은 선진 축산 기술 도입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돼지에게 사람이 남긴 잔반이나 인분을 먹였기 때문에 고기에서 누린내가 날 수밖에 없었고, 사람 몸속 기생충이 돼지로 옮겨가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돼지고기는 바싹 익혀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그러나 삼성이 대규모 기업형 양돈장을 운영하면서 깨끗하고 영양가 있는 배합사료를 공급하고, 전담 수의사가 돼지 건강을 관리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를 통해 누린내와 기생충 없는 청결한 돼지고기 생산이 가능해졌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식문화 혁신과 삼겹살 문화의 정착 과정
삼성의 양돈 사업은 단순히 돼지 개체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1971년 일본이 돼지고기 수입 자유화를 선언하면서 한국도 일본에 돼지고기를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고, 삼성은 이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대규모 양돈장 운영을 통해 안정적 물량 공급이 가능해졌고, 위생적인 사육 환경과 품질 관리 시스템은 수출 경쟁력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돼지고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였습니다. 6, 70년대만 해도 돼지고기는 "누린내 나는 역한 고기"로 여겨졌고, 보쌈이나 족발처럼 누린내를 잡는 것이 조리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업형 양돈장의 배합사료와 위생 관리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돼지고기 품질이 혁신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삶거나 찌지 않고 불판에 구워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삼겹살이라는 단어가 2021년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 것은 단순한 돼지 부위가 아니라 "한국식 구운 돼지고기 요리"를 의미합니다. 미국에서는 바비큐를 할 때 삼겹살보다 돼지 앞다리살이나 목살로 만든 풀드 포크를 선호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삼겹살을 주로 햄, 소시지, 베이컨 같은 가공식품으로 소비합니다. 삼겹살을 직접 구워 먹는 문화는 한국 고유의 것이며, 이는 기술 발전과 산업 구조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개인의 미각 취향이 아니라 산업 구조와 정책, 기술이 식습관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만 삼성의 역할을 다소 영웅 서사처럼 부각시키면서 동시대 다른 축산 주체나 사회적 논쟁, 예를 들어 소규모 축산농가의 입장이나 환경 문제 등은 충분히 다루지 못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소울푸드를 경제사적 맥락에서 조명한 이야기는 식문화가 단순히 전통이나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화와 기술 혁신의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삼겹살은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상적 음식의 배경에는 1960년대 한 기업가의 과감한 도전과 젊은 축산 전문가들의 헌신, 그리고 선진 축산 기술 도입이라는 산업사적 혁신이 있었습니다. 삼겹살 문화는 단순히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기업형 양돈 시스템과 품질 관리 기술이 돼지고기의 이미지를 180도 바꾸면서 가능해진 것입니다. 한국 식문화의 형성 과정을 경제사와 기술사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우리는 일상 속 음식이 품고 있는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B4CxtyG3Kgw&list=PL272srkmrzAE1Hhdu3w2SI8hHjl8vYwk8&index=5